지방 쓰는 법
제사 전날 밤에 검색하게 되는 그것. 무엇을 어떤 순서로 쓰는지, «학생»과 «유인»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인터넷마다 똑같이 적혀 있는 «가로 6cm 세로 22cm»가 대체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까지 근거를 찾아 정리했습니다.
지방은 «임시» 신주입니다
지방(紙榜)은 신주(神主)를 모시지 않는 가정에서 종이에 글씨를 써서 임시로 모신 신위(神位)입니다. 가주(假主), 허위(虛位), 또는 민간에서 «종이 신주»라고도 불렀습니다.[1]
원래는 사당에 나무로 만든 신주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사당을 짓고 신주를 만들어 관리하는 일이 아무 집에나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주를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종이에 대신 써서 모시고, 제사가 끝나면 태웁니다. 근거는 『가례(家禮)』의 주석에 있습니다. 형제가 멀리 떨어져 살면 형의 집에는 신주를 두지만 동생은 신주를 세우지 못하니 지방을 쓰고 제사가 끝나면 불사른다는 대목입니다.[1]
«임시방편»이라는 말이 좀 서운하게 들릴 수 있는데, 조선 초기에는 사대부 집안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문건의 『묵재일기』 1545년 2월 5일자에 지방을 써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1517년 『중종실록』에는 기제를 사당 있는 집에서 지내지 않고 다른 집에서 지방을 써서 지내는 풍조를 신하가 지적하자 임금이 «그 말이 지극히 마땅하다»고 답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1] 500년 전에도 다들 지방을 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6cm × 22cm»는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
지방을 검색하면 종이 크기가 거의 예외 없이 «가로 6cm, 세로 22cm»로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의 출처를 밝혀 둔 곳은 잘 없습니다.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가례』에는 지방의 크기나 형태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습니다.[1] 가장 근본이 되는 예서에 규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례편람』도 크기는 못 박지 않고, «후백지(厚白紙)로 만들되 적당한 크기로 잘라» 쓰라고만 합니다.[1]
숫자가 나오는 것은 후대의 기록입니다.
| 기록 | 규격 |
|---|---|
| 『홍재전서』 | 높이 1자 2치, 넓이 3치 『가례』의 혼백 제도를 따랐다고 밝힘 |
| 『의례준칙』(1934) | 너비 2~3촌, 높이 6~7촌의 백지 |
흔히 도는 «6cm × 22cm»와 겹치는 것은 아래쪽, 1934년 『의례준칙』입니다.[1] 언론도 예법상 «길이 20~22cm, 폭 5~6cm의 백색 한지»를 주로 쓴다고 전합니다.[3] 요컨대 이 숫자는 『가례』 같은 근본 예서에서 내려온 규격이 아니라, 비교적 근래의 준칙에 적힌 치수가 관행으로 굳은 것에 가깝습니다.
환산값은 어림입니다. 1촌을 약 3.03cm로 보고 계산했는데, 조선에서 쓰던 자는 주척·영조척 등 종류마다 길이가 달랐습니다. 원문에 적힌 것은 «촌»이지 센티미터가 아니라는 점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크기에 정답이 있다기보다 글씨를 단정히 쓸 만한 크기면 됩니다.
모양은 어떨까요. 기록들은 모두 신주의 형상처럼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형태로 만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실제 민간에서는 그냥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썼습니다.[1]
종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등은 한지가 없으면 흰 종이로 대체해도 충분하다고 권했습니다.[3]
무엇을 쓰나 — 네 토막으로 끊어 보면
길게 붙어 있어서 어려워 보이지만, 지방은 네 토막입니다. «누구인지 → 어떤 관계인지 → 무슨 벼슬을 했는지 → 어떻게 높여 부르는지» 순서로 쓰고, 맨 끝에 «신위(神位)»를 붙여 마칩니다.
『사례편람』이 정한 서식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쪽은 «현모고모관부군신위(顯某考某官府君神位)», 어머니 쪽은 «현모비모봉모씨신위(顯某妣某封某氏神位)». 여기서 «모(某)»는 그 자리에 각자 맞는 말을 채워 넣으라는 표시입니다.[1]
아버지 (벼슬이 없던 경우)
어머니 (본관·성씨는 그 집에 맞게)
파란 글자가 사람마다 바꿔 넣는 자리입니다.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
① 현(顯) — 높여 부르는 말
관계를 나타내는 말 앞에 «현(顯)»을 붙여 현고(顯考)·현비(顯妣)처럼 씁니다. 다만 주의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현»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의 아랫사람한테는 쓰지 않습니다.[1] 그래서 동생이나 자식의 지방에는 «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② 관계
| 고인 | 쓰는 말 |
|---|---|
| 아버지 / 어머니 | 현고(顯考) / 현비(顯妣) |
| 할아버지 / 할머니 | 조고(祖考) / 조비(祖妣) |
| 증조부 / 증조모 | 증조고(曾祖考) / 증조비(曾祖妣) |
| 고조부 / 고조모 | 고조고(高祖考) / 고조비(高祖妣) |
| 남편 / 아내 | 현벽(顯辟) / 망실(亡室)·고실(故室) |
| 형 / 형수 | 현형(顯兄) / 현형수(顯兄嫂) |
| 동생 | 망제(亡弟)·고제(故弟) |
| 자식 | 망자(亡子)·고자(故子) |
출처: 「지방(紙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
③ 벼슬 — «학생»은 학생이 아닙니다
가장 많이 오해받는 자리입니다. 여기에는 고인이 지낸 최종 관직명을 씁니다. 그런데 벼슬을 한 적이 없으면 «학생(學生)» 또는 «처사(處士)»라고 씁니다. 부인은 «유인(孺人)»이라고 씁니다.[1]
그러니까 «현고학생부군신위»의 «학생»은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뜻이 아니라,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대부분의 집에서 이 글자를 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벼슬을 한 경우, 여자는 남편의 품계에 따라 «정경부인(貞敬夫人)»·«정부인(貞夫人)»·«숙부인(淑夫人)» 등의 호칭을 씁니다.[1]
④ 부군(府君) / 본관과 성씨
고인을 부르는 칭호 자리입니다. 남자는 «부군(府君)»이라 쓰고, 여자는 본관과 성씨를 씁니다(예: 김해김씨). 자식이나 아우의 경우에는 이름을 씁니다.[1] 그리고 맨 끝에 «신위(神位)»를 붙입니다.
부모를 함께 모실 때 — 좌고우비
지방은 신주와 마찬가지로 개인마다 별도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례편람』도 «신위마다 각기 쓴다»고 했습니다.[1]
다만 부부를 함께 모실 때는 종이 한 장에 나란히 쓰는데, 이때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좌고우비(左考右妣)», 곧 오른쪽(동쪽)에는 어머니, 왼쪽(서쪽)에는 아버지의 신위를 씁니다.[1]
부부 합설 — 왼쪽(서) 아버지, 오른쪽(동) 어머니
«왼쪽·오른쪽»이 헷갈리기 쉬운데, 사전은 동·서를 같이 밝혀 두었습니다. 왼쪽 = 서쪽 = 아버지, 오른쪽 = 동쪽 = 어머니입니다. 제사상 앞에 서서 지방을 바라볼 때 내 왼편에 아버지가 오게 됩니다.
할머니가 두 분 이상일 때는 어떻게 할까요. 『사례편람』은 별도의 종이에 각각 쓴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또 부녀자의 상일 경우에는 조고위(祖考位)를 설치하지 않습니다.[1]
한글로 써도 되나, 사진으로 대신해도 되나
됩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2023년 11월 2일 발표한 권고안에서 «신위는 지방 대신 사진을 이용해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축문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2]
지방의 글자 역시 한자 대신 한글로 써도 무방하다는 것이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성균관유도회총본부·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내놓은 차례상 표준안의 설명입니다.[3] 한글로 쓰면 위의 네 토막이 그대로 «현고 학생 부군 신위»가 됩니다.
제사가 끝나면 지방은 태웁니다. 애초에 그러라고 종이에 쓰는 것이니까요.[1]
확인하지 못해 쓰지 않은 것
이 글에 없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일부러 뺐습니다.
- 붓이 아니면 안 되는지. 『사례편람』은 «해서체로 가늘게 적어 넣는다»고 서체만 말합니다.[1] 필기구를 규정한 전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 태우는 방법과 장소. 제사 후 소각한다는 것까지는 확인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태워야 한다는 규정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이렇게 안 하면 큰일 난다»는 종류의 말.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집안과 지역마다 다르고, 문중에서 지켜 온 방식이 있다면 그쪽이 먼저입니다.
한 장으로 정리
| 묻는 것 | 답 |
|---|---|
| 종이 크기 | 근본 예서에는 규정 없음. 통용되는 «6×22cm»와 겹치는 기록은 『의례준칙』(1934)의 너비 2~3촌·높이 6~7촌 |
| 종이 종류 | 후백지·백지. 흰 종이로 대체해도 됨 |
| «학생»의 뜻 | 벼슬을 하지 않았다는 표시. 부인은 «유인» |
| «현»을 쓰는 경우 | 윗사람에게만. 제주의 아랫사람에게는 쓰지 않음 |
| 남자 / 여자 칭호 | «부군» / 본관과 성씨 |
| 부모 함께 모실 때 | 좌고우비 — 왼쪽(서) 아버지, 오른쪽(동) 어머니 |
| 한글·사진 | 둘 다 가능(성균관 권고) |
| 제사 후 | 태움 |
날짜가 헷갈린다면
지방을 쓰기 전에 먼저 정해야 할 것이 날짜입니다. 돌아가신 날만 넣으면 앞으로 10년치 제삿날을 한 번에 보여드립니다. → 제사·기일 날짜 계산기
«돌아가신 날이냐 전날이냐», «윤달에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하나»가 궁금하시면 제삿날 정하는 법에 근거와 함께 정리해 두었습니다. 음력으로 날을 잡는 일이 하나 더 있는데, 이사입니다. 손 없는 날은 한 달에 여섯 번뿐이 아닙니다도 같이 보세요.
참고 자료
- 김미영, 「지방(紙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정의와 이칭, 『가례』·『홍재전서』·『의례준칙』·『사례편람』의 규격, 호칭 격식, 좌고우비, 『묵재일기』·『중종실록』 기록
- 「'제사상을 생일상처럼 차려도 되나요?' 성균관 "좋습니다"」, 한국일보 2023년 11월 2일 —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권고안의 지방·사진·한글 축문
- 「설 차례 지낼 때 '지방' 어떻게?… 사진만 둬도 괜찮아요」, 천지일보 2024년 2월 9일 —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성균관유도회총본부·한국유교문화진흥원 차례상 표준안의 지방 관련 설명, 통용되는 종이 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