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 한 달에 여섯 번뿐이 아닙니다

이사철에 «손 없는 날은 다 찼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셨다면, 이 글을 읽어 보세요. 원래 정의는 훨씬 넓습니다.

먼저 손이 무엇인지

«손»은 방위와 날을 따라다니며 사람의 생활에 해를 준다고 믿어 온 귀신입니다. 공경하되 멀리했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말로, 중국 술서의 태백살(太白煞)과 같은 것으로 봅니다.[2] 음력 날짜에 따라 동서남북을 옮겨 다닌다고 여겼습니다.[1]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살(煞)들은 해와 달을 따라 방위를 옮기는데, 손은 해와 달에 관계없이 날에 따라 방위를 옮겨 갑니다.[2] 그래서 복잡한 택일 원리를 몰라도 음력 날짜만 알면 누구나 계산할 수 있습니다. 민속박물관 사전은 복잡한 택일 원리를 이렇게 단순하고 규칙적으로 바꿔 쓴 것이야말로 손 없는 날 풍속이 끈질기게 살아남은 원동력이라고 짚습니다.[1]

손은 이틀씩 돌아갑니다

음력 날짜의 끝수만 보면 됩니다. 손은 동 → 남 → 서 → 북 순으로 이틀씩 머물다가, 끝수가 9인 날 하늘로 올라가고 끝수가 0인 날에는 땅에 있습니다.

음력 끝수해당 날짜손의 위치
1, 21, 2, 11, 12, 21, 22일동쪽
3, 43, 4, 13, 14, 23, 24일남쪽
5, 65, 6, 15, 16, 25, 26일서쪽
7, 87, 8, 17, 18, 27, 28일북쪽
99, 19, 29일하늘
010, 20, 30일

끝수가 9·0인 날은 손이 사람 사는 세상에 없으니 어느 쪽으로 가도 걸릴 것이 없습니다. 이 여섯 날이 흔히 말하는 «손 없는 날»입니다.[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사를 하는 날은 반드시 손이 없는 9일·10일·19일·20일·29일·30일 등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고 현황을 적고 있습니다.[2]

음력 한 달은 30일(큰달) 또는 29일(작은달)입니다. 작은달에는 30일이 없으므로 그 달의 손 없는 날은 여섯 번이 아니라 다섯 번입니다.

여기서 다들 놓치는 것

달력 사이트들은 대개 이 여섯 날만 찍어 줍니다. 그런데 사전을 끝까지 읽어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손은 하루에 한 방위에만 있고, 가리라고 한 것도 그 방위입니다.

«손이 있는 방위에는 출행 · 승선 · 행군 · 공격 · 수조 · 장례 · 동토 · 이사 · 구의 · 혼인 · 입택 · 개정 · 재식 · 수렵 · 벌목 · 부임 등의 일체의 행위를 피하도록 하였다.»[2]

«그날 아무것도 하지 마라»가 아니라 «그 방향으로 하지 마라»입니다. 동쪽에 손이 있는 날은 동쪽으로 가는 일이 꺼려질 뿐, 서쪽으로 이사하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도 손 없는 날을 정의하면서 끝수가 9·0인 날과 함께 행사하려는 방향에 손이 없는 날을 나란히 꼽습니다.[1]

계산해 보면 차이가 큽니다. 30일인 달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이사한다면, 피해야 할 날은 1·2·11·12·21·22일 여섯 날뿐입니다. 나머지 스물네 날이 전부 쓸 수 있는 날입니다. 한 달에 여섯 번과 스물네 번은 날 잡기의 난이도가 아예 다릅니다.

손 없는 날 달력에서 방향을 골라 보시면 후보가 어떻게 늘어나는지 그 자리에서 보입니다.

덤으로 좋은 날 둘

무방수날 — 음력 2월 9일

손 없는 날 중에서도 음력 2월 9일은 «무방수날»이라 하여 어떤 일을 해도 해가 없는 날로 여깁니다. 음력 2월 초하루부터 초여드레까지 이틀씩 사방으로 손이 돌다가 초아흐레에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성주단지를 뒤집어 놓아도, 시신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전할 만큼 꺼릴 것이 없는 날로 보아, 이날 변소를 옮기고 집을 고치고 평소 못 박지 못하던 곳에 못을 박았습니다.[1]

윤달 — 한 달이 통째로

윤달은 «여벌달·공달·덤달»이라 불리며 걸릴 것도 탈도 없는 달로 여겨 왔습니다. 속담에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고 하고, 집수리나 이사도 윤달에 하면 가릴 것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산소를 손질하거나 이장하는 일도 흔히 윤달에 했습니다.[3] 윤달은 19년에 일곱 번쯤 돌아오니 마침 걸린다면 운이 좋은 셈입니다.

날을 정했다면 예약을 서두르세요

손 없는 날에 수요가 몰리는 것은 분명합니다. 2022년 뉴시스 보도에서 서울 마포구의 한 이삿짐센터 관계자는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은 그해 상황을 두고 «손 없는 날에도 당일 예약이 가능할 정도»라고 말하면서, «지난해만 해도 손 없는 날은 최소 이사 두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했는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덧붙였습니다.[4] 뒤집어 보면 평상시에는 두 달 전 예약이 기준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인 할증률을 적은 자료는 업체 홍보 글뿐이라 여기에 수치를 옮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방향을 따져 후보를 넓혀 두면 «그날밖에 없다»는 상황 자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용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참고로만

이 풍속에는 예전부터 비판도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협기변방서』는 손(태백살)의 뿌리가 인도 역법에 있는데 인도의 역서는 초하루와 보름을 세는 방법 자체가 달라 날짜가 서로 맞지 않으므로 태백살에 대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2] 조선 관상감이 증보해 펴낸 『천기대요』도 손을 태백살이라 하면서 혼례 때 초례상 차리는 방향을 피하는 정도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1]

오늘날에 대해서는 «생활을 위해서 빈번하게 이동을 해야 하는 도시인들의 생활 속에서는 손에 대한 가치도 두려움도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2] 그러니 이 글도, 달력도 «반드시 이날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족과 날짜를 맞춰야 할 때 근거를 들고 후보를 넓히시라고 만든 것입니다.

손 없는 날 달력 열기
음력으로 날을 세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기일 제사입니다. 제삿날 정하는 법에서 윤달 기일과 «전날 논쟁»을 함께 정리했습니다. 지방 쓰는 법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김만태, 「손 없는 날」,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출처: 손 없는 날–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2. 「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윤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이사업계 "손 없는 날에도 당일 예약 가능해요"」, 뉴시스 2022년 10월 9일